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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Homo Auditus] ‘선고’의 엄중함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5-12-02 14:11:27 조회수 32

 

내가 근무했던 대학은 후문 쪽으로 작은 길 하나를 두고 법원 건물과 나란히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를 법원 골목이라 불렀다. 재판 날 오후 무렵, 여기를 지나면 길모퉁이 곳곳에서 언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본다. 패소 판결 선고를 받은 사람이 소송 상대의 차를 가로막고 말싸움을 벌인다. 

선고는 났지만, 그냥 물러서기가 억울하여 법정 밖에서라도 한 판 붙을 기세이다. 패소자가 변호사와 얼굴을 붉히는 장면도 목도된다. 말없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처박는 사람은 유죄로 법정 구속 선고를 받은 피의자의 가족이다. 선고를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인생행로를 달리 구축(re-setting)해야 한다. 선고 듣기의 생애적 괴로움이 여기에 있다. 

병원도 선고가 넘치는 곳이다. 의사가 내리는 사망선고나 불치병 선고는 그 자체가 운명이다. 엄청난 충격이다. 선고하는 일은 의사에게도 쉽지 않다. 외과 의사들은 생전 처음 환자에게 메스를 대는 것보다 유가족에게 의사로서 첫 사망선고를 내릴 때가 가장 두렵다고 한다. 

선고를 내린다라고 하는 데에 주목해 보면, 선고에는 거역 불가의 기제가 들어 있다. 고대 사회에서 문제 사태를 신전의 신에게 물어서 해법을 강구하고 죄인을 벌하던 신탁(神託)의 기능을 떠올리게 한다. 선고는 대개 안 좋은 일을 고한다. 그러므로 선고는 불운의 미래를 확정하면서, 이를 어떻게 감당할지를 듣는 이에게 요청한다. 선고 듣기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선고는 영어로 ‘sentence’이다. ‘문장이라는 뜻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sentence는 의견·경구(驚句) 등을 뜻하는 라틴어 ‘sententia’에서 온 말로, 원래는 ‘sentire(듣다, 감지하다)에서 feel(느낌)에 이르기까지의 사고 과정을 의미했다. 이후 ‘sentences’는 문법 구조상 완전한 생각(a complete thought)을 담는 언어적 단위(문장)로 인식되면서 선고의 뜻까지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법정의 선고(sentence)는 형식이나 내용에서 흠결 없는 완전한 생각이 되어야 함을 감당하게 되었다. 

선고의 엄중함이 이러할진대, 재판거래 따위로 국민의 눈총을 받는 법관에게 선고의 책무를 맡길 수는 없다. 선고를 듣는 이는 피고만이 아니다. 공의로운 선고를 기대하며 그런 선고를 듣고자 하는 이가 국민 모두임을 왜 모른단 말인가. /박인기 경인교대 명예교수·국제PEN한국본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