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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Homo Auditus] 말꼬리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5-07-08 15:40:49 조회수 73

 

몸통과 꼬리를 분간하는 능력은 전체와 부분을 구분하는 능력으로 통한다. 이는 인지적으로는 사물의 구조와 체계를 이해하는 고등사고 능력이고, 정의적으로는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동물의 꼬리는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잘 관찰하면 그 기능이 의외로 돋보인다. 꼬리는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달리는 방향을 바꾸는 방향키 역할을 하고, 꼬리를 몸에 말아 체온을 유지하게 한다. 꼬리를 적에게 떼어 주고 몸통을 살리는 도마뱀도 있다. 

말꼬리는 부정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동물의 꼬리가 몸통에 어떤 순기능을 하는지 잘 살핀다면, 말꼬리의 대화적 생산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상대에게 말꼬리를 잡혀, 본의의 전달은 고사하고 곤욕을 치르는 장면과는 대척이 되는, 신선한 말꼬리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메시지의 본론을 빛나게 하는 말꼬리, 듣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배려하는 말꼬리, 내 말의 소통을 넓혀주는 말꼬리 등, 이런 말꼬리가 없으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내 말꼬리의 순기능을 상대에게 인정받으려면, 상대의 말꼬리를 기분 나쁘지 않게 들으려는 수양이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말꼬리는 상대를 얕보거나 무시하는 용법으로만 쓰여 왔다. 사실 말꼬리로 트집을 잡는 사람은 내 주장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느 대학 출판부에서 낸 토론 지도서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까지도 상대의 말꼬리 잡기 전술을 심어 놓고 있다. 예컨대, 상대의 말을 확대해석하라,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라, 논쟁의 진행을 방해하라, 상대가 우월하면 인신공격을 감행하라 등이 그러하다. 이런 기술은 말꼬리 잡기를 부추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회 의사당에서 다반사로 보는 장면이다. 

상대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싶을 때가 있는가. 그럴 때는 이렇게 물어보라. 나 지금 너무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가. 나 지금 사안의 큰 맥락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나 지금 유치한 소영웅주의 심리에 빠져 있지 않은가. 말꼬리 싸움을 지나치게 즐기는 대중, 그리고 그것을 확대하여 중개하는 미디어, 모두 일종의 저렴한 관음증에 빠졌다 해야 할 것이다.

주변이 온통 말꼬리 잡는 사람이라면? 어떡하겠는가. 오프라 윈프리의 권유를 주목해 본다. “여러분을 더욱 높이 올려줄 사람만 가까이하세요.” /박인기 경인교대 명예교수·국제PEN한국본부 회원